"당첨만 된다면 투잡 뛰고 사채라도 쓰겠습니다"..과천 로또청약 몰리는 사람들 [매부리레터]

이선희 2021. 8. 1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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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억 로또' 과천 지정타 S8, 23일부터 청약
15억 초과 대출 금지 때문에
실수요자들 "대출 막히면 사채라도 쓸판"
대출금지, 실거주 조항 등 겹겹이 규제에 꼬여버린 청약 제도
경기도 과천시 아파트 시세를 이끌고 있는 랜드마크 단지 과천 푸르지오 써밋 전경 /사진=매경DB
[매부리레터] "당첨되면 사채라도 쓸 각오로 청약합니다.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 청약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인가요?"

13일 과천지식정보타운 린 파밀리에(S8) 청약을 준비 중인 이 모씨는 "입주 때 제발 집값이 떨어져서 이 아파트가 15억원이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집값이 떨어지길 바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대출 규제 때문입니다. 시세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서는 대출이 안 나오기 때문에, 행여라도 입주 때 잔금 대출이 불가능할까 노심초사하는 것입니다.

올해 극심한 청약 가뭄 속에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과천지식정보타운 S8블록 청약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실수요자들은 꼬여버린 대출과 청약 규제로 인해 "행여라도 대출이 안 나오면 사채라도 끌어 쓸 각오"로 청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과천지정타 린 파밀리에
13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과천지식정보타운 린 파밀리에(S8)가 23일 특별공급, 24일 1순위 청약을 진행합니다. 총 659가구가 공급되는데, 318가구는 공공분양, 나머지 341가구 중 227가구는 신혼희망타운, 114가구는 행복주택으로 향후 공급됩니다.

일반 공공분양은 단일 전용면적 84㎡로 구성돼 있으며 분양가는 8억원 초반입니다. 예를 들어 84A 타입이 8억5000만원(5층 이상)입니다. 전세는 놓을 수 없습니다. 의무 거주 기간은 5년입니다. 팔 수도 없습니다. 전매 제한 10년입니다.

분양가가 9억원 이하이기 때문에 중도금 대출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잔금 대출입니다. 중도금 대출을 받은 뒤 입주 때 잔금 대출로 전환하는데, 이때 시세가 15억원을 초과하면 대출이 안 나옵니다. 2019년 정부는 시세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파트 입주 때 시세가 15억이 넘는다면, 당첨자는 분양가 전액을 자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거주 의무가 있어 전세를 놓을 수 없으므로 분양가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계약이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기준으로는 인근 과천 래미안슈르 전용 84㎡가 시세 15억~16억원(KB 기준)입니다. 인근 인덕원 엘센트로도 최근 집값이 크게 뛰면서 같은 평형 기준 시세 15억~16억2000만원까지 형성됐습니다.

실제 은행에서는 "9억원 이내 분양가로 공급됐더라도 입주 때 15억원을 초과하면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올해 12월 입주 예정인 과천 지정타 S4(과천 푸르지오 어울림 라비엔오) 당첨자들은 입주를 앞두고 노심초사 보내고 있습니다. 이곳 또한 7억~8억원대에 분양을 했으나 입주 시점에 시세 15억원이 초과되면서 대출이 불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과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첨자분들 문의가 많아 본점에 문의한 결과, 15억원 초과 대출 금지는 입주 예정 아파트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면서 "단 아직 감정평가액이 나온 것은 아니어서 대출이 가능한지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통상 은행들은 감정평가를 해서 시세를 산출한 뒤 입주 한 달 전 사전점검 때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시작합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직 과천 S4 잔금 대출에 참여할지 결정이 안 됐다. 대출 가능 여부는 입주 한 달 전쯤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는 과거 시세가 없기 때문에 감정평가액이 높게 나올 수 없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감정평가 업계는 "주변 시세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감정평가사 A씨는 "신축 아파트는 분양가와 프리미엄으로 시세를 결정한다. 이 '프리미엄'을 주변 시세와 비교해거 맞추는데 통상 시세의 90~95% 수준을 적용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변 아파트들이 20억원을 넘어가면, 분양가가 9억원이더라도 주변 시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프리미엄을 쳐준다는 얘기입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일부 은행에서 (대출) 영업을 위해 감정평가를 낮게 받아서 15억원 이하로 맞출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항의가 들어올 수 있고, 만약 다른 은행들이 15억원 초과로 감정평가를 하게 되면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과천 S4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대출이 가능한지, 아닌지 알 수가 없으니 계획을 못 세우고 있다"며 "당첨될 때는 '로또' 분양이라고 생각해서 좋았지만 그사이 집값이 이렇게 뛰어서 대출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올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분양해서 실거주 의무는 없습니다. 만약 대출이 불가해 잔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전세를 놓을 수 있지만, 올해 2월 이후 수도권에서 분양한 분양가상한제 적용 아파트는 실거주를 해야 합니다. 입주 때 잔금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계약 포기 외에 방법이 없는 셈입니다.

과천 지정타 S8을 준비하는 박 모씨는 "청약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무주택 실수요자들일 텐데 분양가의 100%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느냐"면서 "당첨되면 투잡을 뛰고 사채라도 끌어 쓸 각오로 청약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게 제대로 된 청약제도가 맞느냐"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서울 신축 아파트, 수도권 입지 좋은 곳의 아파트들이 15억원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2019년 도입된 15억원 초과 대출 금지 규정이 실수요자들의 '내집 마련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31만3999가구로 전체 123만9650가구의 25.33%입니다. 서울 아파트 4채 가운데 1채는 15억원이 넘는 초고가 아파트인 셈입니다. 15억원 초과 대출 규제가 시작된 2019년 말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19만6000여 채, 비중으로는 15.6%에 불과했습니다. 2년 새 집값이 급등하면서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입니다. 신축 아파트 중심으로 시세가 뛰면서 앞으로 이러한 대출 금지 아파트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올해 2월 이후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아파트는 2~5년 의무 거주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대출 금지로 인해 '내집'에도 못 들어가보고 계약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청약을 준비 중인 직장인 이 모씨는 "이미 소득 대비 대출을 제한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있는데 왜 15억원 초과 대출 금지 규정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실수요자들이 내집 마련을 할 때 대출 가능 여부도 확답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청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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