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전세가 15억 넘는 아파트 단지, 3년새 18배
서울에서 전용면적 84㎡(공급면적 약 34평형) 전셋값이 15억원을 넘는 아파트 단지 수가 최근 3년 사이 18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세금 감면을 위한 1주택자의 실거주 의무를 강화하고, 작년 7월 새 주택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 매물이 급감한 탓에 전셋값이 급등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임대차법 개정 후 1년 사이 서울 아파트 전세 실거래가는 10% 넘게 올랐다. 이는 임대료 인상이 5% 이내로 제한되는 갱신 계약까지 포함한 것으로, 신규 계약의 상승률은 50%가 넘는 곳이 많다.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강남은 물론 강북에서도 최근 1년 사이 전셋값이 수억 원씩 오른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전세 보증금을 올려줄 여력이 안 되는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선택하거나 서울 외곽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규제 여파로 주거 약자인 무주택 세입자들의 ‘주거 사다리’가 끊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평형’ 아파트 전세가 15억원
3일 부동산 정보업체 경제만랩이 국토교통부 통계를 분석한 것에 따르면 서울에서 전용 84㎡의 전세 실거래가가 15억원을 넘는 아파트 단지는 2018년 3곳에서 올해는 53곳으로 늘었다. 15억원 이상 전세 거래 건수도 2018년 17건에서 올해 351건으로 급증했다. 전용 85㎡ 이하 아파트는 4인 가족이 살기에 좋고, 수요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택이어서 흔히 ‘국민평형’으로 불린다. 반면 15억원은 정부가 2019년 12월부터 대출을 전면 금지한 주택 매매가격 기준선이다. 국민평형 아파트 전셋값이 고가 주택의 기준이 되는 매매가격을 뛰어넘을 정도로 전셋값 상승세가 가팔랐다는 것이다.
지역별로는 강남구가 26개 단지로 가장 많았고 서초구(21곳), 송파구(4곳)가 뒤를 이었다. 성동구 성수동 ‘트리마제’와 동작구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도 포함됐다. 종로구 ‘경희궁자이’(14억3000만원), 광진구 ‘광장힐스테이트’(14억원), 마포구 ‘신촌그랑자이’(13억원) 등도 올 하반기 전세 실거래가가 15억원에 근접하고 있어 앞으로 강북 지역에서도 전용 84㎡ 아파트 전셋값이 15억원을 넘는 사례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갱신 계약 포함해도 10% 넘게 올라
한국부동산원 실거래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실거래가지수는 1년 전보다 10.1% 상승했다. 이 통계는 신규·갱신 관계없이 신고된 모든 전세 거래를 집계한 것이다.
정부는 작년 7월 주택임대차법을 개정하면서 전·월세 계약의 1회 갱신을 의무화하고, 갱신 계약 임대료 인상률은 5% 이내로 묶었다. 법 개정 후 올해 6월까지 서울의 아파트 전·월세 계약 중 77.7%가 갱신 계약이었다. 다섯 집 중 네 집꼴로 전세 계약의 임대료 인상이 제한됐지만, 신규 계약의 전셋값이 워낙 많이 오른 탓에 평균 상승률이 10%를 넘은 것이다.
실제로 최근 1년 사이 전셋값이 수억 원씩 급등한 사례가 서울 전역에서 확인된다. 성북구 삼선동 ‘삼선SK뷰’ 전용 84㎡는 작년 3분기 6억8000만원이던 전세 최고가가 올해 3분기 10억2000만원으로 뛰었고, 노원구 중계동 ‘청구3차’ 역시 7억5000만원에서 10억원으로 올랐다.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전셋집을 옮기기 어려운 사람들은 늘어난 보증금을 월세로 충당하는 현실이다.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는 지난달 보증금 13억1250만원, 월세 63만원에 계약됐고, 일원동 ‘디에이치자이개포’도 보증금 12억원, 월세 120만원에 거래됐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집주인들도 늘어난 보유세 때문에 보증금을 올리기보단 월세로 돌리는 걸 선호하고 있어 ‘전세의 월세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며 “무주택자의 고통을 덜려면 지금이라도 민간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나 다주택자 규제 완화 같은 특단의 조치를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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