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값 평균 5.5억인데 1억 이하 거래 40%..왜?[집슐랭]

이덕연 기자 2022. 1. 12.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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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17.9%→이달 39%
전수조사 착수에도 비중 급증
거래 절벽속 저가 매수세 여전
안성 공도읍선 수천만원 하락
조정 가능성 대비 신중 기해야
수도권 내 아파트 단지 전경./연합뉴스
[서울경제]

전국에서 1억 원 이하 아파트 거래가 전체 거래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기록한 약 15%에서 5개월 연속 증가한 결과다. 집값 상승세가 수 년 간 이어져 전국 평균 아파트 가격이 5억 5,000여 만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저가 아파트 거래 비중은 되레 늘어나고 있다. 배경으로는 공시가격 1억 원 이하 저가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세제 혜택과 더불어 대출 규제가 꼽힌다.

‘규제 풍선효과’에 저가 아파트 비중 급증

12일 서울경제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 아파트 거래 가운데 1억 원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번 달 10일 기준 39.4%에 달했다. 지난해 8월 15.8%였던 1억 원 이하 저가 아파트 비중은 10월 17.9%, 12월 22.6%로 오르더니 올해 1월 39.4%까지 치솟아 40%에 근접했다. 일부 매수자는 실수요자일 가능성이 있지만 상당수는 법인·다주택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부에 따르면 저가 아파트 매수자 중 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4월 5%에서 9월 17%로 급증했다.

저가 아파트 거래 비중이 증가하는 일차적인 배경으로는 ‘규제 풍선효과’가 지목된다. 정부는 지난 2020년 7·10 대책에서 법인과 다주택자의 주택 취득세를 최대 12%로 높이면서도 공시가격 1억 원 이하 주택은 세금 중과 대상에서 배제했다. 법인과 다주택자가 공시가격 1억 원 이하 주택을 수십 채 사도 기본 취득세율 1.0%(농어촌특별세·지방교육세 포함 시 1.1%)만을 적용받게 한 것이다. 당시 일각에서는 공시가격 1억 원 이하 주택으로 매수세가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정부는 저가 주택은 투기 대상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를 들어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우려대로 7·10 대책 이후 공시가격 1억 원 주택으로 수요가 몰렸고, 가격은 치솟았다. 공시가격이 1억 원 이하인 경기 평택시 고덕면 궁리 ‘태평아파트' 전용 59㎡는 7·10 대책 이후 1년 사이 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 최고 실거래 가격이 2020년 7월에 1억 200만 원이었지만 2021년 7월에는 2억 1,000만 원을 기록했다. 단지 전체 거래량도 2020년 2분기 35건에서 2021년 2분기 114건으로 225.7% 늘었다. 전용 49㎡가 공시가격 1억 원 이하인 평택시 군문동 ‘군문 주공 1단지’도 같은 기간 거래량이 15건에서 42건으로 늘었다. 이외에도 경기 안성시 공도읍 ‘주은청설’ ‘주은풍림’ 등의 아파트 단지로 매수세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경기 평택시 고덕면 궁리 '태평아파트' 전경./이덕연 기자
‘전수조사’ 경고했지만 시장에서 안 먹혀

‘규제 틈새’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하자 국토부는 지난해 11월 법인·다주택자의 저가 아파트 매수 건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시장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한 지 1년이 훨씬 지나서야 뒤늦게 조사에 나선 것이다. 당시 국토부는 “거래 과정에서 업·다운 계약, 편법 증여, 명의 신탁 등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경찰청·국세청·금융위원회 등 관계 기관에 통보해 엄중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경고 이후에도 저가 아파트로 거래가 몰리면서 공시가 1억 원 이하 아파트의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배방 삼정 그린코아’ 전용 47㎡는 지난해 10월 최고가가 1억 7,500만 원(13층)이었지만 12월에는 1억 8,300만 원(10층)에 거래됐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정부가 사실상 엄포를 놓은 11월 이후에도 전국 각지의 다주택자로부터 매수 문의가 왔다”며 “이들은 법에 걸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매수에 거리낌이 없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전국 다수의 저가 아파트에서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동 ‘우방타운’ 전용 84㎡는 지난해 10월 최고가가 1억 7,800만 원(13층)이었지만 이후 가격 상승세가 이어져 12월에는 1억 8,900만 원(13층)에 거래됐다. 10월 3억 1,000만 원에 거래됐던 경남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성원’ 전용 49㎡는 11월 24일 3억 2,000만 원으로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외에도 공시가격이 1억 원 이하인 강원 원주시 단계동 ‘세경 3차’ 59㎡와 충남 천안시 동남구 신방동 ‘초원그린타운’ 39㎡ 등의 가격이 치솟았다.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상승세가 이어지자 전문가들은 정부에 대한 시장 신뢰가 줄어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규제 풍선 효과로 인해 저가 주택의 가격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전수조사 방침을 밝혔음에도 거래 비중이 늘어난 것은 반복된 정책 실패와 번복으로 인해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최근 가파른 증가세에는 대출 규제 영향도

시가 1억 원 이하 주택의 거래 비중은 지난해 11월 있었던 정부 발표 이후 꾸준히 늘었지만 증가세가 가파르지는 않았다. 월별로 보면 정책 발표 전인 10월 17.9%에서 11월 19.8%, 12월 22.6%로 늘었다. 하지만 올해 1월에 들어서는 40%에 가까운 39.4%를 나타내고 있다. 비율 급등의 원인으로는 ‘규제 틈새’와 더불어 대출 규제의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차주 단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로 총 대출액이 2억 원이 넘는 개인은 연 소득의 40%(제 2 금융권 평균 50%)까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오는 7월부터는 총 대출액 기준이 1억 원으로 줄어든다. 사실상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대출이 필요 없거나, 소액의 대출 만으로 투자가 가능한 저가 아파트가 올해 들어 비교적 활발히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체적으로 주택 가격이 높아지고 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저가 주택으로 매수세가 쏠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규제만 보고 달려드는 ‘묻지마 투자’ 경계해야

한편 일부 공시가격 1억 원 이하 아파트 단지에서는 단기간 급등에 따른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단타 갭 투자의 성지’로 알려진 경기 안성시 공도읍 진사리 주은청설 전용 39㎡는 지난해 9월 최고가가 1억 7,500만 원이었지만 12월에는 연이어 1억 2,000만 원(14층)과 1억 500만 원(1층)에 거래됐다. 앞서 언급된 경기 평택시 ‘태평아파트' 59㎡도 지난해 9월 기록한 2억 5,000만 원(5층)에서 12월에 2억 1,000만 원(13층)으로 가격이 빠졌다. 1층 매물은 2억 500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경기 안성시 ‘주은풍림,' 전북 전주시 ‘송천주공’ 등에서 하락세가 거세다.

단기간에 가격이 올랐다가 매수세가 잠잠해지면 언제든 급락할 수 있는 만큼, 비규제 혜택만을 본 투자는 위험도가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진형 회장은 “비규제 틈새만을 노린 ‘묻지 마 투자’는 이후 조정 가능성이 높아 주의해야 한다”며 “특히 지금과 같은 조정장에는 입지를 고려해 신중히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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