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대신 처벌에 집중"..'D-1' 중대재해법의 끝은 소송전?

박종홍 기자 2022. 1.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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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안법vs중대법]② "누가 뭘해야 하는지 전문가도 몰라"
"수사기관 입장선 어려움 있을 것"..소송전 격화 전망도
25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 공사 붕괴사고 현장 상층부에서 전문구조대원 등 수습당국이 실종자 수색·잔해물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2.1.25/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서울=뉴스1) 박종홍 기자 =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중대재해처벌법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건설업계를 비롯한 산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처벌 조항도 문제이지만 처벌 기준도 불명확해 현장의 혼선을 키울 수 있다고 걱정한다. 중대재해법의 모호한 해석을 두고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대재해법 시행 코앞…"기업인 잠재적 범죄자 만들어"

26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법은 27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해당 법안은 중대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의 경영책임자(CEO)를 처벌하는 내용이 골자다.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1명 이상 사망하는 경우 1년 이상의 징역과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같이 받을 수 있다. 2명 이상의 노동자가 중상을 입은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광주 동구 붕괴 사고 이후 중대재해법 강화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한편, 법 시행을 앞두면서 우려를 표시하는 재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만난 자리에서 "중대재해법이 보완 없이 이대로 시행된다면 많은 기업인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며 우려의 뜻을 전한 바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24일 중대재해법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정부와 국회에 시설개선과 전문인력 채용에 대한 비용 지원,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 조항 신설 등을 요청했다.

◇"예측·준수 가능성 낮아…법 적용·해석 두고 논란 클 것"

건설업계에서는 경영자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범위가 너무 넓어 안전보다는 처벌만을 위한 법이라고 주장해왔다. 시공능력 상위권 건설사의 경우에는 국내 현장 수가 100군데를 훌쩍 넘는데 해당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모두 CEO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처벌 기준에 대한 우려도 꾸준히 제기된다. 경영책임자가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에 처벌 대상이 되는데 해당 의무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양적 측면 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안전·보건 확보 여부를 평가한다는 방침인 점도 이같은 우려를 부추기는 대목이다. 고용노동부는 20일 "안전 및 보건 확보는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의 구축부터 이행까지의 일련의 과정"이라며 "조직이나 인력을 형식적으로 갖추는 것만으로 해당 의무를 온전히 이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17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사고 현장에 제거되지 못한 잔해물이 보이고 있다. 2022.1.17/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이 때문에 정부는 안전보건계획 수립 가이드북 마련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우려는 불식되지 않는 상황이다. 향후 형사 소송 과정에서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건설업계의 경우에는 원청, 하청, 대여업체 등이 섞여 있는데 누가 무엇을 이행해야 하는지를 전문가조차 알기 어렵다"며 "중대재해법은 법의 기본 전제인 예측 가능성과 현실적 준수 가능성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중대재해센터장은 "안전확보 의무를 위반했더라도 중대재해와의 인과도 성립해야 처벌이 가능한데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입증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법의 적용과 해석을 두고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여러 논란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건설안전특별법(건안법)은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만큼 중대재해법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보다 촘촘한 안전 관리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대재해법이 경영책임자 처벌에 초점을 맞춘다면 건안법은 감리자나 현장 관리자 등에 책임을 묻는 법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공업체 뿐 아니라 발주자나 설계자, 감리자 등 모든 건설현장 주체에 안전 책무를 부여했고 업무에 따른 책임 소재도 명확히 했다"며 "건안법이 시행되면 중대재해법과 상호 보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건설업계는 이 역시 이중 규제라며 걱정하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업계 입장에서 건안법은 이중규제가 될 가능성이 커 경계하는 게 사실"이라며 "이번 광주 아파트 사고로 건안법 제정 가능성이 더 커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정진우 교수는 "건안법 역시 현장에서 작동되지 않을 내용이 많다"며 "건설업 사고가 왜 반복해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정치권과 행정기관의 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처벌 강화 같은 보여주기식 대책이 오히려 안전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1096pag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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