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500억 더 준다는 업체 탈락..송도판 '대장동 의혹'

함종선 2022. 4.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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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처에 1500억원 적게 주는 업체 선정,배임 논란
재무계획 항목, 외부심사위원 없이 발주처직원 3명만 심사
내부 3명의 심사 점수 동일..GS건설 76점,현대건설 69점
3조원대 대형 공모사업인데 발주처 관리감독 시스템 '전무'
공공택지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송도국제화복합단지 2단계 조감도. GS건설

인천의 강남이라 불리는 송도 내 공공택지에 아파트 등 3500여 가구의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3조 원대 대형 공모사업(송도국제화복합단지 2단계)의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발주처가 특정업체를 노골적으로 밀어줬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내부 심사위원(발주처 직원)들로만 구성된 재무계획 부문 심사위원단이 한 업체에 아주 높은 점수를 줬고, 그 결과 교수나 건축사 등의 외부 심사위원들이 평가한 개발계획 부문 평가 결과와 상관없이 내부 심사위원들이 높은 점수를 준 업체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의혹의 요지다. 즉 하나 마나 한 공모 절차였다는 것이다. 특히 대장동에서 논란이 된 초과이익 부분과 관련해서는 떨어진 업체가 선정된 업체보다 1500억원가량을 발주처에 더 많이 주기로 해 배임 논란도 일 전망이다.

빨간선 안이 아파트 등 3500여가구의 주거시설과 세브란스병원 등을 짓는 송도국제화복합단지 2단계 사업부지.네이버항공뷰


3일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한 '송도국제화복합단지 2단계 조성사업 평가표'에 따르면 재무계획 평가 분야에는 발주처인 송도국제화복합단지개발(이하 송복개발) 직원 A,B,C씨만이 평가위원으로 들어가 A~C씨 모두 GS건설 콘소시엄은 76점으로 평가했고, 현대건설 콘소시엄은 69점으로 매겼다. A~C씨의 각 콘소시엄에 대한 평가 점수가 모두 동일하다.

송복개발은 인천도시공사와 인천교통공사가 지분 51%를 가진 공기업 성격의 특수목적법인(SPC)인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각 지자체의 도시공사 같은 공기업이 발주하는 공모사업에서 특정 평가 분야 평가 위원을 내부 직원으로만 구성하는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LH는 전원 외부 전문가들로만 평가위원을 구성하고, 대장동에서 화천대유 콘소시엄을 사업자로 선정한 성남도시개발공사와 같은 도시공사도 분야별 내부 평가위원 비율이 높아야 50%다.

공모에 참여한 2개 콘소시엄에 대한 평가표. 발주처 직원 3명이 매긴 점수가 동일하다. 송복개발

'국회의원 사무실 근무'가 경력인 심사위원

송복개발 관계자는 "현대건설도 좋은 회사이기 때문에 차이는 박빙이었지만,평가 당일 프리젠테이션 때 평가위원 공통 질문 중 하나인 자금 조달 방법 부문에서 현대건설이 대답을 잘 못 한 것 같다"며 "이 프로젝트는 공익적인 면이 있고, 이익을 다른 사업에 재투자해야 하는 남다른 면이 있기 때문에 자금 투입 시기 등 자금 스케줄을 잘 파악할 수 있는 내부 직원들로만 재무계획을 평가하는 게 바르다고 봤다"고 말했다.

문제는 재무계획 분야에서 큰 점수 차이로 선정된 GS건설보다 2위로 떨어진 현대건설의 신용등급이 2단계나 높고, 부채비율이나 유동비율 등의 재무구조도 현대건설이 더 우량하다는 점이다. 신용등급이 높으면 사업자금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어 발주처가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유동성이 풍부한 현대건설이 필요할 때 자금을 즉시 투입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사업자 공모 평가분야 및 평가요소별 배점.송복개발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인 김경률 회계사는 "현대건설과 GS건설의 주요 재무지표를 살펴본 결과 현대건설이 우위에 있다"며 "공모사업에서 재무계획을 회계사 같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 직원이 평가하는 경우도 없다"고 지적했다. 송복개발 측 평가위원 3인의 이력은 국회의원(통합민주당) 사무실 근무, 대학 행정직 근무, 시행사 근무 등이고, 송복개발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한 전 인천시의원이다. 송복개발 대표는 박남춘 현 인천시장이 임명했다.

특히 사업에서 초과이익이 날 경우 발주처에 돌아가는 초과이익 배분도 현대건설 측은 90%를 배분하는 거로 제안했고, GS건설 측은 75%를 배분하겠다고 해 현대가 약 1275억원의 수익(최근 분양한 송도자이더스타 분양가 기준)을 발주처에 추가로 주게 돼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재무계획 부문에서만 GS건설 콘소시엄이 현대건설 콘소시엄보다 21점(3명 심사 점수 합)을 더 받아 외부 심사위원의 개발계획 평가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개발계획 부문 중 건축계획 부문에서의 평가점수 차이는 불과 0.67점이었고, 도시계획 부문에서는 GS건설 콘소시엄이 12.67점을 더 받아 소계 13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만약 재무계획에서 내부 심사위원들이 GS건설에 점수를 몰아주지 않았다면 당연히 현대건설이 선정되는 상황이었다. 객관적 지표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는 제안개발 이익 평가 부분(2차 심사항목)에선 현대건설이 발주처에 249억원의 수익을 추가로 제공하겠다고 해 이 부분에서 12.65점을 더 받았다. 초과이익 배분과 합해 약 1500억원을 발주처에 더 주겠다는 계획이다.

현대건설 측 관계자는 "발주처에 훨씬 많은 이익을 주는 업체를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떨어뜨린 건 발주처 직원의 명백한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전국에서 '짜고 치기식 공모사업' 횡행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개발업체 대표는 "지금 전국 지자체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짜고 치는 고스톱'식의 대형 공모사업이 횡행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를 관리 감독할 기구나 관련 법이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것"이라며 "공공택지에서 공기업이 진행하는 형식의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이 사실은 특정 세력의 돈벌이 창구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송도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한 관계자는 "인천시의 위임을 받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관련 사업을 살펴야 하는 게 맞지만, 인천시가 설립한 송복개발과 같은 SPC를 관리 감독할 법적인 권한이 경제자유구역청에 전혀 없다"며 "송복개발과 같은 SPC의 자체 이사회에서 결정하면 그걸로 모든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이고, 시 감사실도 감사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인천시의회 강원모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인천시가 만든 SPC를 관리 감독할 법과 규정이 미비해 특혜의혹 등 SPC와 관련한 문제들이 빈번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동산개발 관련 부처인 국토교통부도 도시개발사업이나 경제자유구역법으로 진행하는 개발사업의 공모지침은 안 만들었다.


주택공급지연 피해

가뜩이나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엉터리 공모 때문에 주택공급이 지연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송도국제화복합단지 2단계는 당초 월 상반기에 아파트를 일반에게 분양할 예정이었으나 선정된 사업자의 무리한 사업계획과 이에 따른 인허가 지연 등으로 올 연말로 늦춰졌고, 사업비 2조5000억원 규모의 안양 박달 스마트밸리 조성사업은 공모에 참여한 업체 중 한 곳이 발주처인 안양도시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입찰절차속행금지가처분'을 지난 2월 법원이 일부 인용하면서 공모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스마트밸리 공모 심사 때는 11시간에 걸친 긴 심사 후 채점이 마무리되고 결과 발표를 바로 앞둔 상황에서 안양도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 심사를 중단시켰고 '재공모'를 선언한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안양도시공사가 밀었던 GS건설 콘소시엄이 2위가 되자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 법원이 안양도시공사의 이상한 공모에 제동을 건 것이다.

송도국제화복합단지나 박달스마트밸리 모두 문제가 되는 건 GS건설 콘소시엄인데, 두 콘소시엄은 모두 GS건설과 광주광역시에 기반을 둔 제일건설이 짝이다. 제일건설은 대장동 택지 중 공개입찰로 진행된 3개 필지를 가장 높은 액수를 써 내 '싹쓸이'했다.

모 건설업체 대표는 "대장동처럼 공공의 몫인 사업이익을 특정 세력이 가져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현재 문제가 되는 전국의 대형 공모사업을 철저히 들여다보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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