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사고 후 깐깐해진 '행정'.. 건축물 착공 14% 급감

조성호 기자 2022. 6.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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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늘어나 속타는 건축주

서울 금천구의 한 이면도로에 7층짜리 건물을 지으려는 개인사업자 A씨는 수개월째 공사를 시작하지 못해 골머리를 않고 있다. 지난 3월 건축 허가를 받고 땅값까지 모두 치렀는데, 구청이 수차례 ‘착공 신고’를 되돌려보낸 탓에 첫 삽을 못 뜨는 것이다. A씨는 “지난 1월 광주광역시 화정동 아파트 붕괴 사고로 안전을 철저히 체크해야 한다며 구청이 추가 서류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면서 “안전 점검이 중요한 건 알지만, 공기(工期)가 밀리면서 대출받은 땅값 이자만 매달 400만원 넘게 나간다”고 말했다.

올해 초 광주광역시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이후 전국적으로 건축물 착공 건수가 예년보다 눈에 띄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재 값 인상 등 이유도 있지만, 건설 업계에선 “철거 작업 관리나 안전평가 등 지자체의 행정 절차가 깐깐해져 사업에 지장을 빚을 정도”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2일 국토교통부 건축행정시스템 ‘세움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착공 건물은 3만4741동(棟)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4.4% 감소했다. 직전인 2021년 4분기 착공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한 것을 감안할 때 두 자릿수 감소 폭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서울의 1분기 착공(1174동)으로 1년 전보다 6% 줄었고, 아파트 붕괴 사고가 난 광주광역시(401동)는 20.6% 급감했다.

◇안전 감독 감화에 착공 감소

업계에서는 건축 허가부터 착공까지 통상 3개월 정도를 예상한다. 1분기 전국 착공 건수가 대폭 감소한 것과 달리 작년 4분기 건축 허가 건수(5만8356동)는 1년 전보다 3.2% 늘었다. 올해 건물을 지으려고 지난해 말 건축 허가를 받은 사람은 예년보다 늘었는데, 실제 공사에 들어간 건수는 급격히 줄었다는 이야기다.

건설 업계에선 광주 붕괴 사고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부쩍 강화된 안전 관련 행정 절차가 착공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현장에선 “이전에 없던 간섭과 생색내기식 감독 절차가 눈에 띄게 늘었다” “건축 허가를 받고도 착공에 들어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이전의 2배”라는 불만이 나온다.

서울에서 꼬마 빌딩을 전문으로 짓는 중소 건설업체 B사 관계자는 “예전엔 현장 사진만 제출하면 되던 작업도 요즘은 구청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나 고용노동부에서도 사람이 나와 감독을 한다”며 “철거 작업 때 규정에 따라 굴착기 아래 받침목을 3~5개 정도 괴는데, 갑자기 20개 정도 받치라고 지시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소형 주거용 건물을 짓는 C사 대표는 “모든 구청에서 일제히 ‘조례가 새로 만들어졌다’며 이전에 없던 심의를 추가로 받고, 새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한 무더기 생겼다”며 “공무원들이 이 많은 서류를 다 검토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기 지연·금리 인상 ‘이중고’

착공이 밀리고 사업 기간이 늘어나면서 건축주들은 비용 증가에 속이 탄다. 수도권에 꼬마 빌딩을 지으려는 한 건축주는 “최근 금리 오르는 추세를 보면 하루라도 일찍 공사를 마무리하는 게 이득인데, 행정 절차가 늦어지면서 금융 비용과 인건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말했다. 행정 절차 지연과 원자재 가격 급등에 수지타산이 안 맞아 스스로 착공을 미루는 사업자도 늘고 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건축 허가를 받고도 그냥 착공을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땅 주인도 있다”고 말했다.

과도한 행정 절차가 부담스럽다는 업계 불만에 지자체는 “안전관리 강화는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서울 한 구청 건축 담당 공무원은 “광주 화정동 붕괴 아파트의 경우도 사고 2개월 전 담당 지자체가 안전점검을 했지만 별다른 문제 발견 못 했다는 사실 알려지면서 공무원들도 큰 비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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