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미니 뉴타운' 인데.. 세입자 보상대책 없는 모아타운

최온정 기자 2022. 6. 2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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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성산동 일대 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 세입자 A씨는 최근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이 서울시 ‘모아타운’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골치가 아프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4년간 거주할 계획이었지만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이사를 가야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A씨는 “아직 1년도 채 못살았는데 벌써 이사해야할 생각을 하니 답답하다”면서 “모아타운 사업지는 이주비 지원도 되지 않아 비용부담도 크다”고 토로했다.

서울시가 저층 노후주거지를 정비하겠다는 취지로 미니 뉴타운 개념의 ‘오세훈표 모아타운’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세입자 보상대책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A씨와 같은 상황에 처한 거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는 모아타운으로 용적률이 늘어난 곳에서는 새로 짓는 주택 중 임대주택을 20% 확보하도록 해 세입자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렇게 확보된 임대주택으로도 기존 세입자들을 전부 수용하지는 못해 문제가 커질 전망이다.

◇ “재개발 맞먹는다”… 후보지 21곳 중 16곳이 5만㎡ 이상

2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21일 ‘오세훈표 모아타운’ 첫 후보지 21곳을 발표했다. 올해 2~3월간 각 자치구로부터 대상지 30곳을 추천받은 후 사업의 시급성을 감안해 최종 후보지를 추렸다. 대상지로는 마포구 성산동 160-4 일대를 포함해 ▲종로구 구기동 100-48 일원 ▲중랑구 면목본동 297-28 일원 ▲도봉구 쌍문동 494-22 일원 등 서울 전역에서 다양한 지역이 포함됐다.

서울 중랑구 모아타운 시범사업지 일대 전경./뉴스1

모아타운은 재개발이 어려운 10만㎡ 이내 노후 저층주거지를 한 그룹으로 묶어서 개발하는 모델이다. 모아타운으로 지정되면 지역 내 이웃한 다가구·다세대주택 필지 소유자들이 개별 필지를 모아 블록 단위로 공동개발할 수 있고, 대단지 아파트를 짓는 것도 가능하다. 1~2동짜리 나홀로아파트를 짓는 데 그치는 소규모 주택정비사업과 대조적이다. ‘미니 뉴타운’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실제로 이번에 1차 후보지로 지정된 지역의 규모도 작게는 1만여㎡(송파구 거여동 555 일대)에서 크게는 10만㎡(중랑구 망우3동 427-5 일대)에 달한다. 21곳 중 5곳을 제외하고 전부 5만㎡를 넘는다. 지난 2020년 9월 1차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8곳의 규모가 각각 5만㎡가 채 안됐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모아타운은 재개발 사업 규모를 상회한다.

재개발과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으면서도 인허가 절차는 더욱 간소하다. 소규모 정비사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모아타운은 재개발과 달리 정비계획 수립과 조합추진위원회 승인, 관리처분계획인가 등 일부 절차가 생략돼 사업 기간이 2~4년에 불과하다. 일반 재개발이 평균 8~10년 소요되는 것과 비교하면 절반이 채 안된다.

◇ 세입자 지원책 미비… 전문가 “세입자 보호 등 공익 측면 보완해야”

개발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건물주 입장에서는 좋은 사업이지만, 세입자들은 걱정이 많다. 세입자 보상대책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모아타운은 임대주택 확보 외에는 다른 지원책을 활용하고 있지 않다.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빈집법)에 따르면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에 손실보상에 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재개발의 경우 세입자들에게 ▲임대주택 마련 ▲주거이전비(4개월치 생활비) 지원 ▲이사비 지원 등을 제공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다세대·연립주택의 모습./뉴스1

임대주택 물량도 세입자 전체를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모아타운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들은 임대주택 등 공공기여를 마련할 경우 용적률이 향상되는 혜택을 얻을 수 있다. 이 기준대로 층수를 높일 경우 개발이 완료되면 전체주택 중 20%가 임대주택으로 공급된다. 세입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다세대·다가구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상당수가 새로운 거처를 찾아야 한다.

지원책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세입자들의 불안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세입자 A씨는 “모아타운은 일반 재개발보다 사업 속도가 빨라 2~3년 후에는 퇴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리 건물에는 직장이나 학교가 가까워 장기간 거주할 생각으로 들어온 세입자들이 꽤 있는데 계약갱신 청구권도 사용하지 못하고 이사가게 되는 건 아닐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보다 촘촘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세입자가 많은 다가구·다세대 주택이 몰려있는 지역에서는 임대주택 물량으로도 세입자를 전부 수용하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면서 “사업 규모는 일반 재개발 수준으로 커졌는데 이주지원비와 같은 세입자 보호대책이 부족해 공익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도 “모아타운을 통해 주택을 공급하고 주거환경의 질을 개선한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서민주택 공급과 같은 부분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이런점이 개선돼야 재정착률도 높일 수 있으므로, 사업 추진에 따른 영향을 좀 더 검토해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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